대외경제 변동에 취약한 우리나라의 경우 시장 개입 등을 통해 미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을 1200선 아래로 방어선을 구축하고 외환유동성 확보에 자신감을 피력, 시장불안 해소에 주력하고 있다.
거시경제 전문가들은 지난 2008년 리먼 사태와 달리 '리스크 규모'가 많이 노출돼 있어 충격이 덜하겠지만 유럽의 대외적 불확실성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커 정부의 시장개입 효과가 극히 미비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유럽 재정위기 장기화로 원․달러 환율이 1200선 이상으로 계속 치솟을 경우 대외거래기업 피해 등 실물경제 악화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이에 대한 지속적이고도 구체적인 대책마련이 요구되고 있다.
유로존 위기 고조, 국내 금융․실물 경제 타격 장기화 우려
28일 금융계에 따르면 유로존 위기상황이 더욱 고조되면서 정부와 은행, 대외거래의존기업 등 관련기관에 비상이 걸렸다.
이번 유럽 재정위기 여파가 국내 금융시장에 적지 않은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은행권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시중은행들은 외화대출을 중단하거나 외화채권 발행을 연기하는 등 만일의 경우를 가정한 위기상황에 대비하고 있다.
일부 은행에선 외화차입을 검토하고 있으나 최근 해외기채 비용(외화차입 금리) 상승으로 자칫 무리하게 차입을 늘릴 경우 은행 수익률이 하락할 수 있어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
우리은행(은행장 이순우)은 실수요에 필요한 달러 물량을 제외한 나머지 외화대출을 사실상 중단한 상태다.
신한은행(은행장 서진원)의 경우 5억~10억달러 규모의 글로벌 본드 발행 연기를 검토 중이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우리나라 금융시장의 대외변동성이 크고 유럽계 차입비중(32%)이 높다는 점과 현 3천억달러 수준인 외환보유고의 적정성 우려 등으로 시장불안감이 계속되자 자본유출 증가에 대비해 외화부문의 거시 건전성 정책을 탄력적으로 운용해 나가기로 했다.
지난 26일에는 최종구 기획재정부 국제업무관리관(차관보)이 긴급 브리핑을 열어 "현 외환보유액은 위기 대응에 충분한 수준"이라며 "중국을 제외한 브릭스 국가의 환율 절하폭이 우리보다 크고 주요 아시아 국가는 우리와 비슷하거나 다소 낮다"고 우려를 일축했다.
최 차관보는 "유럽 은행이 전 세계 금융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6%인 점을 고려하면 현재 32%는 크게 높지 않은 수준"이라며 "프랑스와 이탈리아 은행들이 만기 상환을 요청하고 있으나 대부분 다른 유럽 은행들은 차환에 응하고 있고 국내 은행들도 외화 유동성 확보를 위해 적극적으로 차환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경제전문가들 "유럽 재정위기 장기화, 대비책 세워야"
하지만 정부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정치권과 금융계는 우려의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사실, 2009년 기준 한국의 대외의존도는 82.8%로 G20 국가 중 가장 높은 상태를 보이고 있다. 이는 경제규모에 비해 단기성 외국인 투자자금 유출입이 크기 때문으로 6월말 현재 국내에 유입된 외국인 투자자금 총액은 무려 8천949억달러에 달하고 있다.
그리스 디폴트 등 유로존 위기가 가시화되자 한국 국채의 신용파산스왑(CDS) 프리미엄은 지난 23일 뉴욕 시장에서 201bp를 기록, '위기국가'로 분류된 프랑스의 197bp보다 46bp가 높았다.
이탈리아 국가신용등급 강등과 미국 3대 은행의 신용등급이 하락한 9월중순엔 원.달러 환율이 4.8%나 급등하기도 했다. 원.달러 환율은 26일 1200선까지 위협했으나 27일 '유로존 위기 해결' 기대감이 형성되면서 전날(26일)보다 22.7원 내린 1173.10원을 기록했다.
임형석 금융연구원 박사는 "그리스, 이탈리아의 국채를 가지고 있는 유럽의 상업은행들이 국채가격 폭락으로 채권자산 가치가 떨어지면 유동성 부족 문제가 발생한다"며 "이들 은행이 우리나라에 빌려줬던 외화유동성을 회수해 가거나 우리나라에 투자했던 채권자금 또는 주식자금을 빼 가게 되면 국내 금융시장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임 박사는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은행 부문의 외화유동성 확보를 위해 선물환 포지션 한도를 축소하고 외화건전성 부담금 제도를 도입하는 등 여러 노력들을 기울여 왔기 때문에 여건이 크게 악화되지 않는 한 과거처럼 최악의 상황은 오지 않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그는 대외적인 불확실성 측면에서 지금의 유럽 재정위기가 2008년 리먼 사태 때보다는 충격이 덜할 것으로 내다봤다.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처음으로 터질 당시에는 상대방의 손실규모나 파생상품 손실이 어느 정도 일지 전혀 정보가 없어 '카운터 리스크'가 상당히 컸지만 지금은 가령, 그리스 국채를 어느 상업은행이 얼마를 갖고 있는지 리스크가 많이 노출되어 있어 예측이 가능하다는 것.
임 박사는 "다만, 2008년에 비해 유럽 재정위기는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며 "리먼브라더스 사태 때는 정부가 재정지출을 통해 빨리 해결하려고 했었던 반면 지금은 재정부담 문제가 걸려 있어 조기에 해결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울러 그는 실물경제 악화 우려에 대해 "유럽 재정위기로 대외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우리나라 수출여건이 좋지 않지만 아직은 충격이 현실화 되지 않아 상황을 좀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마이경제 뉴스팀/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임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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