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애플사 CEO인 스티브 잡스 사망 소식이 최근 신문 방송 보도시간을 빨아들이고 있다
그의 삶의 궤적과 인류 문명에 미친 영향 등을 생각하면 당연한 뉴스밸류다.
그러나 필자는 좀 더 엉뚱한데 시선이 갔다. 바로 ‘사망’이란 단어였다.
사망했으니 사망이라고 쓰는 게 뭐 시선을 끌만한 일이냐고 할 수 있지만 만약 스티브 잡스가 한국 사람이었다면 어떻게 기사를 썼을까 하는데 생각이 미쳤다.
스티브 잡스 사망이었을까? 아님 스티브 잡스 타계? 아님 서거? 아님 영면? 운명?
예전 기자생활 중 잠시 ‘인사’ 기사를 맡은 적이 있었다.
‘인사’담당자의 업무는 주로 출생 부음 결혼 인사이동등에대한 기사를 작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 유명 연예인들이 아니고는 아주 사적인 출생이나 결혼 소식을 쓸 일은 거의 없고 기사는 주로 부음과 인사이동에 집중된다.
그중 제일 난감했던 것이 부음 기사였다.
사망을 뜻하는 단어가 너무 많고 적재적소 배치가 쉽지 않았다.
주로 많이 사용하는 단어는 물론 스티브 잡스 사망처럼 ‘사망’이다.
그러나 고위직, 사회적 지도층으로 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누구에게는 서거라고 하고 또 어떤 경우는 작고, 또 다른 이에는 별세, 타계, 영면이라고도 해야 한다.
나름대로 사용하는 규범이 어느 정도는 있다.
서거는 유명하거나 훌륭한 분이 돌아가셨을 때, 별세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 타계는 귀인의 죽음을 표현한다고 한다.
그러나 훌륭하다. 잘 알려졌다 아니다, 귀인인지 아닌지 역시 대단히 주관적인 판단이 포함되기 때문에 단어 사용의 객관적인 지침이라곤 할 수 없을 듯하다.
드물게 사용되는 단어까지 포함하면 더 복잡해진다.
서거와 비슷한 사거가 있고 별세의 높임말인 서세도 있다. 운명 기세 영서 장서등도 엄연히 죽음을 표현하기 위해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단어다.
이들 단어를 다 영어로 찾아보면 모두 한가지다. ‘death’ 혹은 ‘die’다.
물론 ‘die’는 pass away, expire, perish, breathe one's last 등으로 조금 더 다양한 표현이 있지만 이는 계급성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단지 순수한 표현의 기교 차이일 뿐이다.
아~ 영어로 기사 쓰는 나라에 사는 기자들은 편하겠다.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바로 ‘death’하나면 만사형통 아닌가?
순수 한글로 하더라도 ‘죽었다’와 ‘돌아가셨다’를 구분해야 한다. 역시 엄연한 계급성을 갖고 있다.
종교적인 표현까지 들어가면 정말 머리가 아프다.
불교인의 사망이냐 개신교인 혹은 천주교인의 사망이냐에 따라 반드시 단어를 달리해야 한다.
스님이 돌아가셨을 때는 입적 혹은 열반이라고 써야 한다.
김수환 추기경 같은 천주교인이 돌아가시면 선종이라 쓴다.
개신교 목사는 소천이 맞은 표현이다.
이들 단어를 제대로 구분 못하고 혼동했다고 하면 그건 그냥 정말 물고 날 일이다. 물고도 사실은 죽음을 표현하는 단어다. 옛날 죄인의 죽음을 물고라고 했다.
그 옛날 죽음의 표현은 현재보다도 몇 배나 더 복잡했다.
붕어, 승하, 훙거, 불록, 장매, 단현, 산화 등이 역시 계급에 따라 구분돼 사용됐다.
문제는 표현법이 이리 많은데 어떤 경우에 어떤 단어를 써야 하는지에 대한 가이드라인도 없다는 것.
어떤 단어를 쓸지 상당히 주관적인 판단이 따라야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노무현대통령 자살 사건이다.
일부 진보 신문은 ‘서거’라고 표현했고 우파 신문은 그냥 사망이라고 썼다. 이렇게 저렇게도 판단이 안선 신문은 그냥 자살이라고 했다.
황장엽 씨 사망 때는 정 반대의 현상이 벌어졌다.
우파신문들은 서거라고 썼고 진보 신문들은 사망이라고 제목을 달았다.
작고 별세 타계 영면의 경우는 거의 계급성의 우열이 거의 없어 더 헷갈린다.
지난 2003년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 사망 당시의 기사 내용을 보면 신문마다 제목이 모두 제각각이었다. 작고 타계 별세 영면이 마구 섞여 있었다. 사망이나 서거는 없었다.
1998년 SK그룹 최종현 회장 사망 시에도 마찬가지였다.
반면 대부분 일반 사람들의 사망 소식은 드라이하게 ‘사망’으로 표현하고 있다.
우리어로 탄생에 관한 표현은 아주 단순하다. 출생 혹은 태어났다 외에 다른 표현이 없다.
결국 태어날 때는 모두가 동등하지만 살면서 계급화하고 그 계급이 죽어서까지 이어지는 한국사회의 구조를 드러낸다.
이 복잡한 문제를 어떻게 물어야 할까? 죽음의 계급을 없애는 방법은 없을까?
요즘 개그콘서트에 애정남 코너가 있다. ‘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남자’다.
서거를 타계라 쓰고 타계를 사망으로 써도 경찰이 출동하거나 잡아가진 않지만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만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애정남 도와주세요~~
애매한 부고 기사 좀 간단명료하게 쓰는 법 좀 정해주세요~~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최현숙 주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