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개발 투자비율을 낮게 책정하고, 대신 조직적인 리베이트 제공에 열중한 이재근 건일제약 대표가 결국 실형이란 철퇴를 맞았다. 보건복지부의 약가 인하 정책이 더욱 명분을 얻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제37 형사재판부는 최근 리베이트를 제공한 건일제약 이재근 대표와 시장조사업체 MNBK 최봉근 대표에게 유죄판결을 내렸다. 이재근 대표는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최봉근 대표는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각각 선고받았다.
이 대표는 병의원과 약국에 38억원 상당의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로 재판에 회부됐었다.
김영중.이재근 각자대표 체제의 건일제약은 반 세기가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 있는 제약사지만, 이재근 대표는 정작 제약회사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연구개발 투자에는 소홀했다.
지난해 건일제약의 실적은 매출액 903억원, 영업이익 97억원, 당기순이익 146억원이다. 그러나 연구개발 투자는 24억원에 불과해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 투자율은 2.6%에 그쳤다.
이는 지난해 상장제조사 연구개발 평균 투자율(K-IFRS 기준) 4.88%의 절반 수준이다. 상장제약사들과 비교해도 광동제약(1.4%), 제일약품(3.3%), 삼진제약, 동국제약(각 3.9%) 등과 함께 최하위권을 이룬다.
또 건일제약의 영업이익률 10.7%와 비교해도 연구개발비 비중이 크게 낮은 수치다. 오히려 광고비로 연구개발비의 2배 가량인 43억원을 썼다.
올해 책정된 연구개발비도 25억원에 머물러 연구개발에대한 이대표의 의지를 의심케 하고 있다. 반면 건일제약 내부에 적립된 이익잉여금은 662억원이 넘는 수준이다.
업계 관계자는 “건일제약은 김영중·이재근 대표 및 특수관계인의 지분이 99%에 달하는 사실상의 가족회사여서 회사에 축적된 이익잉여금은 사실상 오너들의 몫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 대표가 연구개발에서 아낀 비용은 리베이트로 흘러간 것으로 짐작된다.
재판부는 건일제약이 ▲의약품 판매촉진 목적으로 선지원금 제공 ▲기간 수당 명목으로 12억원 상당의 금품 제공 ▲ 의료기관 개설자에게 랜딩비 2억원 제공 ▲MNBK와 공동으로 2009년 7월부터 시장조사 및 역학조사 명목으로 9억원의 경제적 이익 제공 ▲약사에게 수금 수당 명목으로 13억원 상당의 경제적 이익 제공 등 총 38억원 상당의 리베이트를 조직적으로 제공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건일제약 관게자는 “약사에게 수금 수당 명목으로 경제적 이익을 제공한 것은 리베이트가 아니라 수금 촉진을 위한 것일 뿐”이라고 항변했다.
최근 제약업계는 약가인하를 둘러싸고 보건복지부와 날선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제약업체들은 약가인하 시 수익성 악화로 업계가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것이라 반발하고 있지만 복지부는 제약업체들이 연구개발에는 소홀한 채 리베이트에만 열중하기 때문에 리베이트 제공분만큼 약가인하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결국 건일제약의 이번 실형 판결이 보건복지부의 약가 인하 명분을 더욱 강화하는 기폭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상당수의 제약사들이 높은 영업이익을 내면서도 연구개발에는 인색하다. 이익잉여금을 리베이트에 활용하는 것으로 짐작되므로 약가를 과감히 내려서 리베이트로 돌릴 수 있는 이익 자체를 없애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판부 역시 “제약사의 리베이트는 보험재정과 관련이 깊은 예민한 문제인데, 피고(이재근 대표)는 특히 조직적으로 거액을 제공해 죄질이 나쁘다”고 판시했다.
한편 이재근 대표는 실형을 선고받긴 했지만, 앞으로 대표이사로서의 권한 행사에 별다른 제약은 없을 전망이다.
법무법인 서로의 문정균 변호사는 “실형 판결을 받더라도 원칙적으로 법인의 경영권이나 대표권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개별 회사에서 내부적으로 정하기 나름”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건일제약 관계자는 “회사 내부적으로 논의 중이며 아직 구체적으로 결정된 사항은 없다”고 말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전문경영인이라면 몰라도 오너경영인에게 실형 판결은 사실상 의미가 없다”면서 “‘리베이트 쌍벌제’가 도입됐지만, 병원의 의사들에게 자격정지 처벌을 내릴 수는 있어도 사기업인 제약회사 대표의 대표권에는 제약을 가할 수 없어 생각보다 효력이 약한 편”이라고 전했다.
건일제약은 현재 항소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경제 뉴스팀/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안재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