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허일섭 녹십자홀딩스 회장이 녹십자생명보험 매매 계약으로 그룹의 청사진을 새로 그렸다.
현대차그룹은 보험업에 진출해 금융 사업 영역을 한층 확대하게 됐으며, 녹십자는 보험에서 손을 떼고 주력인 제약업에 집중할 방침이다.
정몽구 회장에게는 외형 성장의 발판이, 허일섭 회장에게는 내실을 다지는 기회가 될 전망이다.
◆현대차그룹, 녹십자생명 인수 영향 및 전망
현대차그룹의 3개 계열사(기아자동차.현대모비스.현대커머셜)는 지난 21일 녹십자홀딩스와 녹십자생명 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매매 금액은 2천283억4천19만원이며, 녹십자생명 지분 93.6%를 기아차가 28.1%, 현대모비스가 37.4%, 현대커머셜이 28.1%씩 각각 나눠 인수하는 방식이다.
현대차그룹의 녹십자생명 인수는 그룹의 사업 영역 확대및 금융업 역량 강화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2007년 현대커머셜을 분사시키고, 2008년 HMC투자증권(舊 신흥증권)을 인수하는 등 금융업으로 영토를 계속 확장하고 있다.
특히 이번에 생명보험사를 인수하면서 현대카드-현대캐피탈-현대커며설-HMC투자증권-녹십자생명으로 이어지는 금융 카테고리를 완성, 은행과 손해보험을 제외한 거의 모든 금융영역을 망라하게 됐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금융부문의 상호 시너지 효과를 통해 차별화된 생명보험사업 경쟁력을 확보하는 한편, 자동차 할부금융 기반을 강화해 대 고객 서비스를 더욱 향상시킬 방침”이라고 말했다.
2010회계연도(2010년4월~2011년3월) 기준 녹십자생명의 자산은 2조9천732억원, 자본은 1천524억원이며, 영업수익은 1조361억원, 당기순이익은 52억원이다.
재계 1위를 노리며 삼성그룹을 바짝 쫓는 정몽구 회장은 그만큼 외형을 더 키울 수 있게 된 것이다. 정회장은 오래전부터 현대차그룹이 재계 1위로 도약하기 위해선 인수합병(M&A)이 필수적이라는 결론을 내고 M&A 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특히 올해는 대어인 현대건설과 녹십자생명을 인수하면서 정 회장으로서는 그간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최고의 한 해가 되었다. 덕분에 올해 상반기 순이익(9조1천679억원)에서 삼성그룹(8조1천36억원)을 제쳤으며, 매출액(현대차그룹 93조1천501억원, 삼성그룹 100조989억원)도 맹추격 중이다.
한편 녹십자생명 인수에 동참한 기아차 등 3사는 각각 수백억원의 현금을 지출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3사 모두 막대한 현금을 보유하고 있으며 부채비율 등 재무구조도 탄탄해 별 부담이 되진 않을 전망이다.
올해 상반기 기준 기아차의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1조8천652억원이며, 현대모비스는 2조2천373억원, 현대커머셜은 1천648억원이다.
그러나 녹십자생명 인수로인한 시너지효과는 기대하기 힘들다는 지적도 있다.
골드만삭스는 지난 24일 “업종의 특성을 비교할 때 현대차그룹의 녹십자생명 인수는 직접적인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고 언급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현대기아차, 현대모비스, 현대건설 등 현대차그룹의 주력 계열사들을 감안할 때, 손해보험사는 자동차보험, 화재보험, 기술보험 등 그룹 내에서 소화할 수 있는 물량이 많아 엄청난 시너지효과가 있지만 생명보험사는 단체보험이나 퇴직연금 외에는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을 만한 부분이 별로 없다”고 평했다.
반면 한국신용평가는 지난 26일 현대차그룹이 최근 녹십자생명보험 지분을 인수한 것과 관련해 “녹십자생명과 현대차그룹 모두 영업기반을 확대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다”고 평가했다.
특히 생보업계 하위권(23개사 중 17위)의 녹십자생명은 13회차 설계사등록정착률(28.1%)과 13회차 계약유지율(70%)이 모두 업계 평균(각 34.8% 및 77.3%)보다 낮아 효율성 면에서 많은 의구심을 받아왔다. 이는 현대차그룹의 신인도와 영업기반 확대를 통해 크게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
인수 완료 후 새 사명으로는 ‘HMC생명보험’이 1순위로 거론되고 있다.
◆녹십자 제약업종 집중, 글로벌 제약사 도약 노린다
정몽구 회장이 외형 성장을 꾀하는 것과 달리 허일섭 회장은 내실을 다져나갈 방침이다.
그간 녹십자생명은 보험사 최초로 설계사 자녀에게 대학등록금을 지원하는 등 많은 투자를 했으나, 업계 최저 수준의 정착률을 기록하는 등 낮은 브랜드 인지도와 전문적인 설계사 부족으로 고전해 왔다.
이때문에 녹십자생명보험은 몇 년간 매물로 나와 있었지만 임자를 찾지 못하다가 이번에 전격 매각이 이뤄졌다.
녹십자생명보험 매각으로 허 회장은 잔시름을 덜고 주력인 제약업종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허 회장은 “약 2천억원의 매각 대금을 녹십자 등 제약업에 집중 투자, 글로벌 제약사로의 도약을 노리겠다”고 밝혔다.
이알음 이트레이드증권 애널리스트는 “이번에 확보한 현금으로 녹십자홀딩스가 케미컬 제약사나 혈액원 인수, 연구소 증설 등에 투자해 주력 계열사인 녹십자를 더욱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한 단기차입부채가 지난해 상반기 947억원에서 올해 1천796억원으로 89.6%나 증가하는 등 부채비율이 올라가고 있던 상황에서 녹십자홀딩스의 재무 구조 개선에도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마이경제 뉴스팀/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안재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