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를 읽은 사람들은 조조 진영 최고의 장수인 여포를 비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활쏘기와 말타기에 능해 비장(飛將)이라 불리며 최강의 무예를 자랑함에도 말이다.
이는 전륜한 무예에 앞서 여포가 배신의 아이콘으로 낙인찍혔기 때문이다. 꾐에 넘어가 양아버지인 정원을 죽이고 동탁의 양자가 되고, 훗날 미인계에 걸려 다시금 아버지를 죽이는 패륜을 저지른 것.
당시가 난세였고 여포만이 배신을 한 것은 아니었으나 배신의 대상이 의부라는 게 현세의 평가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결국 여포는 자신의 주인인 조조의 손에 최후를 맞게 된다.
최근 국내 가전맞수인 삼성(회장 이건희)과 LG전자(부회장 구본준)가 미국 라스베이거스를 뜨겁게 달궜다. 2012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 참가 업체 중 유일하게 OLED TV를 선보이며 '일본은 없다'를 전 세계에 알렸다. OLED TV는 CES 혁신상과 최고 제품에 선정됐다.
하지만 같은 시각 한국에선 삼성과 LG전자의 담합사실이 밝혀졌다. 담합사실은 LG전자의 자진신고로 이뤄졌다고 한다. LG전자는 리니언시 제도에 따라 188억원의 과징금을 물지 않게 됐다. 리니언시는 담합 사실을 스스로 신고하면 과징금을 면제해 주는 제도다.
LG전자는 앞서 작년 11월과 12월에도 삼성전자와의 담합을 자진 신고해 175억원의 과징금을 면제 받았다.
LG전자의 잇따른 삼성 뒤통수치기는 '앰네스티 플러스' 제도 때문이다. 가령 A, B 두 회사가 3건을 담합했는데 A가 이중 2건을 자신 신고했을 경우, 그 뒤 B사가 남은 건에 대해 자신 신고를 하면 예전 과징금을 모두 면제받게 된다. A사는 자신 신고한 것에 대한 과징금을 모조리 내야 한다. 결국 한 번 담합을 신고하면 모조리 털어놓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삼성전자 내부에서도 LG전자의 리니언시에 대해 불쾌해하는 분위기는 아닌 것으로 전해졌다. 누구든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삼성전자도 먼저 리니언시를 한 적이 있다.
누가 먼저 뒤통수를 치고 신고를 했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담합을 막기 위해 리니언시와 앰네스티 플러스 등 여러 제도가 존재하지만 기업들은 이마저도 악용하고 있는 게 문제다.
자진 신고나 과징금을 면죄부로 여기기 때문. 담합으로 소비자들로부터 막대한 이익을 챙긴 뒤 10% 남짓한 과징금을 내면 그만이다. 여차하면 자진 신고로 도덕적 체면도 살릴 수 있다. 소비자는 안중에도 없다. '왕'이 아닌 배를 불려줄 '양식'으로 생각하는 셈이다.
그러다보니 담합은 언제 어디서든 대놓고 이뤄진다. 평직원 친목 모임에서 시작해 영업 담당 부장 팀장 등이 1년에 수차례씩 모임을 가질 정도다.
공정위는 리니언시 제도의 악용을 막기 위해 올해 초부터 '5년 내 재담합의 경우 감면 혜택 몰수' 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2~3년 전 담합한 이번 사건에는 적용이 불가능하다. 전문가들은 독과점 시장 내에서는 단속을 피하기 위한 방법이 교묘해질 뿐 담합을 뿌리 뽑지 못할 것이라 예상한다.
이는 비단 삼성과 LG전자에만 국한되는 일은 아니다.
산업계는 최근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1,2위만 살아남는 정글이 되어가고 있다. 그만큼 담합도 쉽다. 2사람이 만나 속닥속닥 하면 그뿐이다. 4~5사람이 모이면 의사결정도 어렵고 밖으로 샐 염려도 크다.
조직적인 담합이 대부분 굵직한 기간산업이나 대기업 지배 산업에서 일어나는 것이 그 때문이다.
이런 기업은 소비자에게 전륜한 무공을 지닌 여포와 다름없는 존재다.
흔히 알려진 대로라면 소비자는 기업을 먹여 살리는 주인(?)이자 아버지같은 존재다. 그러나 수시로 배신하고 등을 친다. 그런 여포를 통쾌하게 심판하는 것은 삼국지에서나 가능한 일일 뿐 현실에서의 여포는 여전히 당당하고 더 번창하고 있다.
요즘의 소비자들은 삼국지나 읽으면서 대리만족을 구할 수밖에 없는 신세다.
[마이경제 뉴스팀/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유성용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