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리판' 중고차 시장서 볼모된 소비자...대기업 진출은 해 넘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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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리판' 중고차 시장서 볼모된 소비자...대기업 진출은 해 넘기나?
소비자 민원 빗발치지만 중기부 대선 앞두고 업계 눈치만
  • 박인철 기자 club1007@csnews.co.kr
  • 승인 2021.10.22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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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능기록부에 없던 누유 발견, 수리비는 소비자 몫?=정선에 사는 강 모(남)씨는 지난 7월 수원의 한 중고차 매장에서 2015년식 기아 모하비를 2450만 원에 구입했다. 수일 후 누유를 확인하고 여러 공업사를 다녔지만 원인을 찾지 못했다. 한 달이 지난 뒤에야 한 정비센터서 뒤쪽 라디에이터 쪽 문제라는  진단이 나왔다. 성능기록부에 냉각수 누유 하자는 기록돼 있지 않아 딜러와 보험사에 구제를 청했지만 법적 기준 주행거리를 넘겼다는 이유로 보증 수리를 해주지 않았다. 강 씨는 "기록부에 냉각수 누유가 기재돼 있었다면 이 차를 구입하지 않았을 것이다. 보험 담당자도 허위기재 사실은 인정되나 냉각수 누유는 보증 항목 제외라며 회피하고 있다"고 답답해했다.

# 중고차업체 '이상없음' 진단 무색...인수 다음날 하자 발견=경북에 사는 김 모(여) 씨는 대구의 중고차 매장에서 아우디 A4를 구매했다. 무사고, SK엔카 진단, 정비내역 이상 없음 등 내용이 담긴 성능기록부를 확인했고 책임보험에도 가입했다. 바로 다음날 50만 원 상당의 스페어 키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40만 원 상당의 교체비가 드는 전구 경고등 방전 문제도 발견했다. 공업사를 통해 정밀진단을 받아 보니 1번 실린더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됐다. 김 씨는 “공업사에서 직접 딜러에게 설명했는 데도 시종일관 알아서 하라는 태도다. 책임보험에 해당되지 않는 항목인데 왜 꼼꼼히 확인하지 않았냐고 되려 역정을 내더라”면서 기막혀했다.

# "차에 문제 발생하면 책임지겠다" 딜러 약속...팔고 나니 모르쇠=서울에 사는 안 모(남) 씨는 지난 8월 중고차 온라인 광고를 보고 아우디 A8을 구입했다. 딜러는 2014년 침수이력이 있지만 수리 후 현재까지 이상 없이 운행했다고 설명했다. 구매 후 문제 발생시 책임지고 수리해 준다고도 약속했다. 하지만 인수 직후 ACC(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작동이 안됐고 다음날에는 엔진 경고등이 떴다. 이후로도 냉각수 누수 등 기타 수리비로 500만 원을 써야 했다. 안 씨 항의에 딜러는 고급 휘발유를 넣지 않아서 경고등이 들어온 것일뿐 성능 문제는 아니라며 책임을 떠넘겼다. 안 씨는 “침수차량임을 감안해도 책임져주겠다는 말만 믿었는데 이제와 나몰라라한다"고 억울해했다.
 
▲중고차 구입 후 연이어 경고등이 발생한 안 모 씨의 차량
▲중고차 구입 후 연이어 경고등이 발생한 안 모 씨의 차량

중고차 시장에 허위 매물과 성능점검기록부 위조 등 사기영업이  여전히 성행하며 소비자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소비자고발센터(www.goso.co.kr)에는 올해에만 중고차 관련해 제기된 소비자 불만이 300여 건에 달한다. 하루에 한 건 이상 제보가 들어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홍성국 의원에 따르면 최근 5년간 1372소비자상담센터에 접수된 중고차 중개, 매매 등 관련 상담 건수는 총 1만8002건이다. 스마트폰(3만2414건), 정수기 대여(3만1051건), 점퍼·재킷류(1만9703건)에 이어 4위다.

미끼처럼 허위 매물을 내세운 뒤 더 비싼 차 구매를 유인하거나 사고 이력과  주행거리를 조작하는 일도 다반사다. 성능점검기록부에 사고나 고장 사실을 적지 않거나 허위 기재하는 경우도 많아 성능기록부를 믿고 중고차를 사더라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원하는 소비자들의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현대자동차가 진출하면 현재 만연된 중고차 시장의 문제점이 개선되고 보다 투명한  매매 시스템이  가능해질 것이란 기대다. 실제 자동차 최대 커뮤니티로 꼽히는 보배드림 게시판에는 현대자동차 등 완성차 업체의 중고차 시장 진출 관련해 '소비자들에 나쁜 점은 하나도 없어 보인다', '적어도 지금 상황보다는 나아질 듯' 등 우호적 반응이 많았다.
▲자동차 커뮤니티 보배드림 '현대차 중고차 시장 진출' 관련 게시글 캡처
▲자동차 커뮤니티 보배드림 '현대차 중고차 시장 진출' 관련 게시글 캡처


하지만 여전히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놓고 이해집단 간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기존 중고차 업계는 자정 노력은 게을리하면서 무리한 요구조건을 제시하며 시간 끌기를 하고 있고 중재를 해야하는 정부는 내년 선거를 앞두고 눈치보기에만 급급해 하는 상황이다. 

지난해 8월 현대자동차가 ‘중고차 시장’ 진출 의사를 밝힌 후 중고차매매산업발전협의회란 이름의 협의체가 출범했지만 논의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최종 관할 부처인 중소기업부가 다시 협의 일정을 잡고 있지만, 협상 타결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일단 연내 다시 최종 테이블을 잡기로 일정을 조율 중이다.

협의회 좌장을 맡았던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중고차 업계에선 내년 대선까지 사안을 끌고가면 흐지부지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실무가 있을 때도 매번 합의되지 않은 새로운 내용을 제시하며 시간을 끌었다. 어떻게든 내년까지 미루려는 의도가 컸을 것”이라 말했다.

그는 이어 “중고차 판매업이 생계형 적합업종인지 판단해 달라는 신청도 벌써 법정 시한을 1년 4개월이나 넘겼다. 정부에서도 법을 어기면서 국민은 지키라고 할 수 있겠는가. 소비자만 생각하면 결론이 쉽게 정해질 사안이다. 무조건 올해 안에 결론을 내야 한다고 다시 독촉할 예정”이라 지적했다. 

중고차 판매업은 2019년 2월 중소기업 적합업종에서 제외됐다. 이미 SK엔카, 케이카 등 대기업 기반 중고차 업체는 물론 대부분의 수입차 브랜드가 인증 중고차 시장을 형성해 국내 완성차 업체의 시장 진출 제한은 형평성에도 어긋나는 상황이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박인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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