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라면, 치킨, 햄버거 등 식품업계에서 매운맛이 잇따라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지만 정작 소비자가 제품의 맵기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정보 제공에는 소홀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식품업체들은 매운맛을 측정하는 스코빌 지수를 '스코빌 몇 만 SHU'라는 식으로 홍보 수단으로 활용하면서도 실제 제품 포장지에는 기재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다.
15일 소비자가만드는신문이 △농심 △오뚜기 △삼양식품 △팔도 등 주요 라면업체 4개사가 판매하는 라면 제품 20종을 조사한 결과 스코빌 지수를 제품에 명시한 경우는 ▶팔도 '킹뚜껑' ▶팔도 '틈새라면' ▶오뚜기 'The Hot 열라면' 세 종에 불과했다. 한국산업표준 인증 기준인 '매운맛 단계 표시'는 전무했다. 삼양식품은 자체적으로 맵기 지수인 'BFL'(불닭 파이어 레벨)을 표기하고 있다.
맵기 정도를 수치로 표현하는데 세계적으로 활용되는 '스코빌 지수'는 고추에 포함된 캡사이신의 농도를 계량화해 매움 정도를 수치로 나타낸 지수다. 그마저도 직관적으로 매움 정도를 알기 어렵다는 취약점이 있다 보니 국내서는 지난 2017년 유탕면류 관련 한국산업표준(KS) 인증 기준인 ‘KS H 2508’이 개정되면서 '매운맛 단계 표시'를 도입했다. 단위당 매운맛 성분 함량에 따라 1단계(순한맛)부터 4단계(매우 매운맛)로 구분된다.
다만 스코빌 지수와 매운맛 단계 표시 둘 다 표기 의무 사항은 아니다 보니 업체들에게 외면받고 있다. 자체 기준을 마련해 매운맛 강도를 표시하는 경우도 있다.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 시리즈의 경우에는 지난 2021년부터 포장에 스코빌 지수 대신 'BFL'(불닭 파이어 레벨)를 1단계부터 5단계까지 구분해 표시하고 있다. 이를테면 오리지널 불닭볶음면은 BFL4, 가장 매운 핵불닭볶음면은 BFL5다.
팔도의 '왕뚜껑' 시리즈 중에서는 지난 2021년 출시된 맵기를 강화한 '킹뚜껑'에만 스코빌 지수가 표시돼 있다. 오뚜기는 지난해 8월 출시한 '더핫 열라면'에는 스코빌 지수를 기재하고 있으나 기존 '열라면'에는 정보가 없다.
농심 ‘신라면’ 시리즈에도 스코빌 지수가 별도로 기재돼 있지 않다. 지난 2023년 출시된 ‘신라면 더 레드’는 기존 ‘신라면’(약 3400SHU)보다 두 배 이상 매운 7500SHU에 달하지만 정작 포장지에서는 이 수치를 찾아볼 수 없다.
오뚜기 관계자는 "더핫 열라면 같은 경우엔 매운맛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소구 포인트로 하고자 일부러 표기한 것"이라며 "매운맛 단계나 스코빌 지수 표시가 법적 사항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식품업계 관계자들은 스코빌 지수 등 매운맛 표기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라면 회사 관계자는 "스코빌 지수는 측정 방식이 지속적으로 고도화되면서 동일 제품이라도 시점이나 검사 방법에 따라 수치가 달라질 수 있다"며 "과거 측정값과 현재 기준 간 차이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이를 일괄적으로 표기하는 데 부담이 있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식품 회사 측 관계자는 “모든 제품에 스코빌 지수를 일괄적으로 표기할 경우 상대적으로 수치가 낮은 제품도 함께 드러나게 된다”며 “이 경우 매운맛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이 ‘이 제품은 덜 맵다’고 판단해 구매를 기피하는 등 역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 치킨·햄버거 프랜차이즈 업체도 예외 없다…매운맛 표기 어디에?
치킨과 햄버거 등 프랜차이즈 업계도 마찬가지다. 매운맛으로 유명한 자담치킨의 '맵슐랭'을 포털 사이트에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에 '맵기', '설사' 등 키워드가 뜨지만 공식적인 매운맛 지표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
네네치킨의 ‘쇼킹핫’, 또래오래의 ‘핫양념’ 등 다른 매운맛 치킨 메뉴 역시 제품명에 맵기를 강조하고 있지만 포장 겉면에 구체적인 수치 표기는 없는 상황이다.
롯데리아 '디지게 매운 돈까스'도 '환자, 임산부, 어린이, 노약자 등 매운맛 섭취에 민감한 분들은 섭취시 주의하기 바란다'고 포장지에 적혀 있긴 하나 덜 매운 '양념맛'과 아주 매운 '디진다맛'의 표기가 맨 위에 작게 병기돼 있다. 포장 구조상 자칫 소비자가 혼동할 수 있는 구조다.

소비자는 제품을 구매할 때 포장지에 기재된 정보에 의존해 결정할 수밖에 없다. 특히 매운맛은 단순히 기호를 넘어 건강과도 직결되는 만큼 객관적인 수치 정보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매운맛 제품이 단순 기호식품을 넘어 ‘도전형 콘텐츠’처럼 소비되는 흐름 속에서 보다 투명한 정보 제공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온다.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매운맛 단계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며 "매운맛 단계 표시가 없으면 소비자들이 불편을 겪을 수 있는 데다 건강과도 직결될 수 있는 만큼 관련 정보 제공이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정은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