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당시 10만명에 가까운 헝가리 유대인을 구출한 후 갑자기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져 온갖 추측을 자아내게 했던 `왈렌버그의 행적'이 50여년만에 베일을 벗게될 것으로 보인다.
미 중앙정보국(CIA)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첩보기관 `더 폰드'와 관련한 왈렌버그의 활동이 담간 문서를 올해 안에 국립문서보관서로 넘길 예정이라고 AP통신이 27일 보도했다.
국립문서보관서로 더 폰드의 기록이 전해지면 그간 베일에 가려졌던 그의 행적이 드러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일각에서는 그가 더 폰드의 공작원으로 활동했다는 소문이 무성하기 때문이다.
왈렌버그는 1944년 1월부터 헝가리 주재 스웨덴 대사관에 근무하면서 학살위기에 놓인 수많은 유대인들의 망명을 도운 인도주의의 대명사로 알려졌다.
그는 나치의 탄압으로 목숨이 경각에 달린 유대인들에게 가짜 스웨덴 여권을 만들어 주거나 힘있는 나치 관료에게 뇌물을 쓰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유대인들의 망명을 도왔다.
하지만 이 같은 선행에도 불구, 곧 불행이 찾아왔다. 1945년 소련군의 부다페스트 입성과 함께 소련군에 체포되면서 그의 행적이 묘연하게 된 것.
2차대전 직후 소련은 왈렌버그의 고국인 스웨덴 정부에 그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통보했다. 그러나 그가 1947년 소련에서 처형됐다는 이야기가 항간을 떠도는가 하면 이름을 숨기고 살다가 1987년 사망했다는 설이 나도는 등 소문만 무성한 형국이다.
특히 러시아 희생자 복권위원회가 지난 2001년 그가 소련 비밀경찰에 총살됐다고 발표하면서 왈렌버그가 유대인 탈출과 주변국 정보수집을 위해 미국에서 파견한 스파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기 시작했다.
소련이 동유럽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 확대를 우려해 그를 체포해 총살했다는 것.
왈렌버그의 족적을 추적한 수전 메시나의 주장도 이런 소문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메시나는 지난 94년 왈렌버그의 사촌으로부터 "그가 미 정부의 고위관리를 위해 일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한 바 있다.
AP통신은 왈렌버그를 둘러싼 소문이 무성하지만 더 폰드의 기록이 공개되면 조만간 그와 관련된 진실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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