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윤주애 기자] 과거와 달리 소비자 권리의식이 향상되면서 기업을 상대로 적극적인 불만표시와 문제 해결에 나서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문제는 그 부작용으로 권리를 남용하는 악성 소비자, 일명 블랙컨슈머도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식품.유통 뿐 아니라 IT.전자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블랙컨슈머 논란이 일고 있다. 결국 터무니 없이 많은 보상을 요구하는 블랙컨슈머 때문에 선의의 클레임을 제기하는 화이트컨슈머가 피해를 보고 있다.
또 국내 굴지의 기업이 블랙컨슈머로 의심되는 개인 소비자에게 공격을 받으면서 이미지가 실추되는 곤욕을 치루는 일도 수시로 빚어진다.
◆ 넌 누구냐? 블랙컨슈머 의혹 잇달아
'블랙컨슈머(Black Consumer) 경계 경보'가 발령됐다. 블랙컨슈머란 구매한 상품에 대해 기업을 상대로 보상금 등을 목적으로 의도적인 악성 민원을 제기하는 소비자를 말한다.
A사는 지난 4월말 자사 제품을 먹고 배탈이 났다는 소비자로부터 5월 한달간 시달렸다. 이 소비자는 고객센터 직원으로부터 불쾌한 응대를 받았다며 A사의 각 사무실로 항의전화를 돌렸다. A사 측은 이 소비자로부터 전화를 안받은 직원이 몇 안된다며, 애초에 문제를 제기한 제품보다 회사측에 분풀이를 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B씨는 지난 3월 식품업체 3곳의 일부 제품에 대해 이물 혼입 등을 이유로 클레임을 제기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이 해당 사례들을 확인해보니 최근 2~3개월간 업체마다 여러가지 이유로 3~7건을 반복적으로 클레임을 제기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해당업체들도 처음에는 제품 교환 및 환불 등으로 처리했으나, 이후 고의성을 의심하고 더 이상의 중재를 거부했다.
C씨는 최근 자신이 사용하던 삼성전자의 휴대폰이 폭발했다는 이유로 해당업체와 마찰을 빚고 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측은 자사 노트북에 대해 2 차례, 휴대폰 2건 등 C씨가 제품결함을 주장한 것이 이번까지 4차례나 이어졌다며, 공인기관에 조사를 의뢰한 결과 자체 결함 보다는 외부 요인에 의한 발화로 결론이 내려졌다며 고의성을 의심했다.
C씨가 블랙컨슈머로 의심 받는 또 다른 이유는 공교롭게도 그가 비슷한 시기에 LG전자를 상대로 휴대폰 민원을 제기하며 회사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기까지 했다는 점이다.
LG전자의 경우 삼성휴대폰 폭발사건이 벌어진 같은 달에 C씨가 A/S센터를 찾아와 휴대폰 전원이 자주 꺼진다면서 배상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당시 C씨가 현장에서 휴대폰 고장을 재연하려 했으나 실패하자, 며칠 뒤 다시 방문해 재연을 시도했고 이 역시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LG전자측은 설명했다.
반면 C씨는 LG전자가 반복되는 고장에도 불구하고 무성의한 대응으로 일관해 어쩔 수 없이 문제를 제기했다는 입장이다. C씨는 자신의 억울함을 알리기 위해 LG전자를 상대로 안티카페를 만들기도 했다.
D씨는 대형 마트에서 쇼핑하던 중 자신의 과실로 벽에 부딪혔지만, 업체에서 보험처리를 거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실상을 살펴보니 D씨가 혹시 모를 후유증에 대비하기 위해 5천만원을 요구하며 오히려 보험 처리를 거부하고 있었다. 마트 측은 현금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D씨를 블랙컨슈머로 의심했다.

▲2008년 3월 한 소비자가 대기업 빵제품서 죽은 지렁이가 나왔다고 제보했다가 조사결과 고의로 지렁이를 집어 넣은 블랙컨슈머로 드러났다.
실제로 블랙컨슈머 논란은 식품 이물사고가 잇따라 발생했던 2008년 이후 급증하는 추세다.
지난해 2월 경기도소비자정보센터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식품업체 대부분이 블랙컨슈머로부터 부당한 피해보상 요구를 받았다. 센터는 2009년 12월 한달간 국내 51개 식품업체를 대상으로 블랙컨슈머 관련 조사를 진행한 결과 조사대상 업체의 94%가 블랙컨슈머 민원을 경험했고, 보상기준을 넘거나 근거없이 피해보상을 요구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 화이트컨슈머 "블랙건슈머 몰아세워"
기업을 상대로 고의적, 상습적으로 악성 민원을 제기하는 블랙컨슈머들은 해당업체에 금전적인 보상을 요구하거나 압박하고, 욕설, 협박성 메일 등을 보내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소수의 블랙컨슈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선량한 소비자 '화이트컨슈머'에게 전가되기 때문에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에는 식품업체에 문제제기를 했다가 블랙컨슈머 취급을 받았다는 소비자 불만이 잇따르고 있다.
E씨는 유통기한을 변조한 분유를 사은품으로 제공한 식품업체에 문제점을 지적했다가 블랙컨슈머 취급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회사측에 금전적인 보상이나 물품을 요구한 적이 없음에도, 일부 직원의 태도로 마음에 상처를 받았다는 것이다.
F씨는 아기가 먹는 분유통이 이상해 해당업체에 민원을 제기했지만 오히려 면박을 당했다. 약간 흠집이 난 것은 사실이지만 인체에 위해하지 않은데도, 이를 온라인 사이트에 사진을 올려 회사의 명예를 훼손시킨다며 당장 사진을 삭제할 것을 종용받았다.
G씨는 회사에서 통조림에서 나온 벌레를 회수해간 이후 블랙컨슈머 대응을 받았다고 호소했다. 업체 측은 조사결과 제품에 벌레가 혼입될 가능성이 없다고 일축했다. 그럼에도 G씨가 검사결과를 납득할 수 없다며 재차 항의하자 현금보상을 기대하는 블랙컨슈머로 몰아세웠다.
◆ 업체들의 '입막음' 처리..블랙컨슈머 불러와
블랙컨슈머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 것은 업체들의 안일한 사후처리 때문이기도 하다. 클레임 자체를 은폐하기 위해 금품이나 상품권 등을 제공하는 등 일부 소비자들에게 '입막음' 처리를 한 것이 부메랑으로 날아온 셈이다.
H씨는 얼마 전 삼양식품 라면을 먹으려다가 길다란 지렁이를 발견했다. 회사측은 이물질을 회수한 뒤 처음에는 지렁이가 아니라고 했다가, 5만원짜리 상품권을 줄테니 모른척 해달라고 입막음을 하려 했다.
I씨는 평소 IT제품이나 자동차 등에 관심이 많아 다양한 안티카페에 가입해 정보를 나누는 편이다. I씨는 일부 업체가 '카페폐쇄'를 조건으로 카페 가입자만을 대상으로 차량의 반복적인 엔진이상에 대해 리콜서비스를 제공했다고 지적했다.
J씨는 음료수를 마시던 중 물겅한 이물질을 뱉었다. 깜짝 놀란 J씨는 업체에 연락더니 음료수 1박스로 입막음하려 했다는 것. J씨에 따르면 해당업체 직원은 이물질이 혼입된 원인을 규며하는데는 관심이 없고, 그저 보상처리 부분에만 관심을 보였다.
사실 업체-소비자 사이에 피해보상 문제는 미묘한 갈등을 빚고 있다.
식품 이물질의 경우 뚜렷하게 발견된 이물이 있을 경우 유통 및 제조단계 조사 후 문제가 된 부분에 대해서는 피해보상 및 개선대책을 요구할 수 있다. 다만 금품이나 물품으로 소비자의 입부터 틀어막으려는 기업들의 태도가 블랙컨슈머를 만들었고, 갈수록 지능화되는 블랙컨슈머에 대해 갈팡질팡하는 태도도 문제를 커지게 했다.
또 소비자기본법 등에 명시된 피해보상기준을 모든 사례에 적용할 수 없다는 점이다. 대부분 문제가 된 제품에 교환 및 환불 규정을 적용하고 있으나, 식품의 경우 문제가 된 제품을 같은 것으로 교환해줬다가 오히려 거절당하는 경우가 흔하다.
결과적으로 지나친 금전적 보상이 오히려 블랙컨슈머를 양산하고, 그로 인해 기업이 피해를 당하고, 정작 선량한 소비자까지 블랙컨슈머로 의심을 당하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블랙컨슈머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기업이 문제를 감추는 데 급급하기 보다는 소비자의 불만 내용과 그 처리 절차를 투명하게 밝히고, 원칙대로 행동할 것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