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10일 딸과 함께 명동성당을 찾은 80대 한재순(세례명 미카엘라) 할머니는 정진석 추기경에게 1억 원짜리 수표 9장을 건넸다.
할머니는 "저는 죄인입니다. 이 세상에 나와서 잘한 일이 없습니다. 좋은데 써주세요"라고 말했다. 이어 정 추기경에게 쪽지를 내밀며 "이곳을 위해서도 써주세요"라고 했다. 쪽지에는 '옹기장학회'라고 적혀 있었다. 옹기장학회는 김수환 추기경이 생전에 설립한 장학재단이다.
할머니는 5일 뒤 한 수도원에도 1억 원을 내놨다. 기부 후 할머니 통장에는 280만원이 남았다. 10억 원은 할머니가 평생 먹을 것 안 먹고 입을 것 안 입고 한푼 두푼 모은 돈이었다.
남편과 함께 채소장사, 쌀장사를 하며 다섯 남매를 키운 할머니는 빠듯한 살림에 평생을 아끼고 절약하며 살았다. 한겨울에 난방도 하지 않고 냉방에서 지냈으며 해진 내의와 양말은 기워 입었다.
평생을 근검절약하며 서로 아껴주며 살았던 부부는 지난달 차례로 세상을 떠났다. 남편 홍용희(세례명 비오. 향년 82세)씨가 지난달 26일 지병으로 별세한 데 이어 건강했던 할머니도 뇌출혈로 이틀 뒤인 28일 8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딸 홍씨는 "어머니의 10억 원은 보통 사람의 10억 원과 다르다"면서 "평생을 근검절약하며 살아온 어머니의 삶이자 당신의 모든 것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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