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 의정부에 사는 윤 모(여)씨는 지난해 2월 척추농양이 생겨 항생제 치료를 받다가 수술 후 재활을 위해 한방병원에 입원했다. 윤 씨는 보행 치료 목적으로 도수치료와 체외충격파 치료를 각각 37회, 30회씩 병행했고 실손보험이 가입된 B보험사에 보험금을 청구했다. 보험사에선 현장심사와 의료자문을 요청했다. 의료자문에 동의하지 않을 시 보험금을 부지급한다고 해 윤 씨는 어쩔 수 없이 응했다. 자문 결과 윤 씨의 도수치료 및 체외충격파 적정횟수는 각각 12회, 5회씩이라며 보험금을 부지급했다. 윤 씨는 "보험사가 비용을 지불한다고 해도 본인들 유리한 쪽으로 하는 건 아닌가 싶다"며 분노했다. B보험사 측은 "척추농양에 도수치료 및 체외충격파를 시행하는 등 일반적인 의학적 기준을 벗어날 여지가 있다면 의료전문가의 판단이 필요하므로 의료자문을 시행하게 된다"며 "척추농양은 척추 추위에 고름이 생기는 질환으로 항생제 치료가 우선이며 도수치료나 체외충격파는 대상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 경북 안동에 사는 김 모(남)씨는 2024년 말 병원으로부터 전립선 비대증 결찰술 시술을 받았다. 김 씨는 가입된 C보험사에 보험금을 청구했으나 지난해 3월 보험사로부터 '의료자문 진행에 동의하지 않았다'며 통원치료비만 지급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김 씨는 "보험사가 소비자들에게 불리한 의료자문을 받아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항의했다. C보험사 측은 "해당 시술은 통원으로도 시술이 가능한데 그 비용을 보전받기 위해 입원으로 치료 후 청구되고 있다"며 "입원적정성을 판단하기 위해 의료적 검토를 요청하고 있으며 자문 결과 입원이 필요한 사유에 해당하면 입원의료비를 지급하고 그게 아닌 경우 통원의료비만 지급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보험사가 보험금 지급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활용하는 '의료자문 제도'가 보험금 부지급 수단으로 변질됐다는 소비자 불만이 치솟고 있다.
소비자들은 의료자문 제도가 보험사들의 보험금 지급 거절에 악용되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보험사들은 의료자문 또한 비용이 들어가며 공정성을 위해 실시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의료자문을 둘러싼 갈등이 계속되자 최근 금융당국은 의료자문 제도의 공정성을 강화하기 위해 대한의사협회와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의료자문이 필요한 경우 소비자가 제3의료자문기관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내용으로 향후 이같은 분쟁이 사그라들지 주목된다.
5일 소비자고발센터(www.goso.co.kr)에 따르면 의료자문 관련 소비자 민원은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분류된다. ①의료자문을 거절할 경우 보험금 심사 자체가 이뤄지지 않는 사례 ②병원에서 진단을 받은 뒤 보험사가 진행한 의료자문으로 보험금이 부지급되는 경우 등이다.
보험금 지급 심사 과정에서 의료자문을 활용하는 삼성화재, DB손해보험, 메리츠화재, 현대해상, KB손해보험, 한화손해보험 등 모든 보험사에서 소비자와 겪는 주요 분쟁 중 하나다.
의료자문이란 보험사가 보험금 지급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외부 전문의에게 의학적 의견을 요청하는 절차다. 보험업법상 보험사가 손해사정 또는 보험금 심사에 참고하기 위해 의료자문을 의뢰하는 경우 의뢰 사유, 의뢰 내용 및 자문을 의뢰할 때 제공하는 자료의 내역을 보험계약자가 보험금 심사·지급 단계에서 설명받아야 하는 사항으로 정하고 있다.
또한 보험사의 의료자문 결과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의료법 제3조에서 규정한 종합병원의 소속 전문의 중에서 추가로 의료자문을 실시할 제3자를 보험사와 함께 정해 그 의견을 따를 수 있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의료자문은 보통 과한 청구나 의심 청구 건에 대해서 실시하게 된다. ▶진단명이 맞는지 ▶입원이나 수술 등 치료가 의학적으로 필요한지 ▶사고·질병과 치료의 인과관계가 있는지 ▶기존 병력이나 퇴행성과 연계 있는지 등이 있다.
보험사들은 위 쟁점들을 파악하기 위해 자문을 받고 보험사가 피보험자로부터 확보한 진료기록, 검사·영상 결과, 의사소견, 사고경위 등의 자료를 갖춰 자문을 의뢰하게 된다.
또한 의료자문사 선정도 보험사와 피보험자 모두 선택권이 있으며 양측이 협의해 제3 의료자문사로 선정할 수도 있다. 의료자문이 만족스럽지 못할 경우엔 분쟁 신고를 통해 조율도 가능하다.
그럼에도 이같은 의료자문 제도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신은 커가는 모양새다. 보험사들이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감추지 않고 있다.
예컨대 직접 진료받은 병원에서는 질병으로 보는 질환도 보험사에서 진행한 의료자문 기관에서는 상해로 진단하는 등 아예 결과가 딴판으로 나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반면 보험사들은 의료자문 또한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반드시 자문이 필요할 때만 실시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또한 의료자문의 공정성을 위해 의료자문을 의료자문관리위원회를 통해 관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대형 보험사 관계자는 "의료자문은 건당 25만 원 정도가 나가는데 보험사들이 굳이 돈을 주고 보험금을 부지급할 이유는 없다"며 "보험사는 이미 큰 손해를 보고 있고 의료자문 또한 반드시 필요할 때만 실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대형 보험사 관계자는 "의료자문 공정성을 위해 업계에선 2021년 의료자문 표준내부통제 기준을 마련했고 이를 사규로 운영하고 있다"며 "특정 자문의에게 자문이 편중되지 않도록 각 사별로 편중도 관리 방안을 수립하고 이를 의료자문관리위원회를 통해 관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 의료자문 갈등 폭증...금융당국, 공정성 위해 제도 개선
최근 금융당국이 의료자문 제도의 공정성 강화를 위해 칼을 빼들었다. 지난 3일 금융감독원은 대한의사협회와 업무협약을 체결하며 제3의료자문의 객관성을 제고, 의료자문 제도 정착에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업무협약은 소비자들이 의사협회를 의료자문 기관으로 선택하는 경우 의사협회가 독립적으로 자문의를 선정해 자문결과를 회신하는 의료자문 지원체계를 마련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앞으로 의료자문 제도는 의사협회를 통해 제3의료자문을 실시할 수 있도록 협력 체계를 구축하고 의사협회는 상급종합병원 또는 종합병원 소속 전문의로 의료자문단을 구성한다. 의료자문 대상은 정액형 보험(실손 제외) 중 뇌·심혈관, 정형외과 후유장해 관련 제3의료자문 건에 대해 시범 실시 후 점진적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결국 ▶소비자가 의사협회를 자문기관으로 선택하고 ▶보험사는 의사협회에 자문 의뢰하고 ▶의사협회가 관련 학회와 긴밀하게 협의해 독립적으로 자문의를 배정해 ▶자문결과를 보험사에 회신하게 되는 것이다.
개선된 제도는 올해 2, 3분기부터 뇌·심혈관과 장해등급 관련해 제3의료자문을 대상으로 시범운영될 예정이다.
금감원 측은 "이번 협약을 통해 보험소비자는 객관적인 의료자문을 받을 수 있는 선택권을 보장받을 수 있다"며 "나아가 의료자문을 둘러싼 불필요한 오해와 분쟁이 줄어 의료자문 제도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는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의사에 대한 정보도 제공하지 않는 의료자문 제도가 공정성과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는 실질적인 자문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조연행 금융소비자연맹 회장은 "자문의사들은 누구라고 밝히지도 않고 환자도 보지 않은 채 의료기록만 보고 의견을 적어 보험사에 제출하는데 객관성이나 공정성을 담보할수있을 지 의문"이라며 "또한 보험사 돈을 받는 의사의 자문이 편향될 수있는 구조적 한계도 있다"고 말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서현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