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임금 인상 중심이던 임단협 쟁점이 최근 성과급 상한 폐지, 인공지능(AI)·로봇 도입에 따른 고용 안정, 원·하청 교섭 등으로 축이 이동하고 있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2024년 창사 첫 총파업을 단행했던 삼성전자 노조는 올해 총파업 수순에 들어가면서 노사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노조는 현재 연봉의 50%로 제한된 성과급 상한 폐지와 영업이익 15%의 성과급 배분을 요구하고 있다. 사측은 특별포상 등을 통해 업계 최고 수준 보상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이지만 성과급 상한 폐지의 제도화는 수용하기 어렵다며 맞서고 있다.
삼성전자 노사는 올해 초 중앙노동위원회 조정 절차를 진행했지만 3월 조정 중지 결정이 내려지며 협상이 결렬됐다. 이후 노조는 쟁의권을 확보해 오는 21일부터 다음 달 7일까지 18일간 총파업을 예고한 상태다.
총파업을 앞두고 고용노동부의 설득으로 노사는 지난 11일부터 12일까지 사후조정 절차를 통해 다시 협상 테이블에 앉게 됐다. 사후조정은 조정이 종료된 뒤 노동쟁의 해결을 위해 노사 동의하에 다시 실시하는 조정이다.
이번 사후조정마저 결렬될 경우 2024년에 이어 두 번째 총파업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커진다. 2024년 파업 당시에는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 조합원 수가 약 3만2000명 수준이었고 실제 파업 참여자는 전체의 15% 수준이어서 생산 차질은 크지 않았다.
현재는 초기업노조가 7만3000명에 달하는 조합원을 확보하고 있고 파업 참여 인원도 3만~4만 명에 달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면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현대차 노조는 올해 임단협에서 기본급 14만9600원 인상(호봉승급분 제외), 순이익의 30% 성과급 지급, 상여금 기존 750%에서 800%로 인상, 정년 연장, 신규 인력 충원, 완전 월급제 도입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와함께 휴머노이드 로봇 도입 문제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현대차그룹이 생산공장 내 자동화 시스템과 휴머노이드 로봇 확대를 추진하자 노조는 생산직 축소와 노동 강도 강화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노조는 올해 초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 생산라인 투입 추진과 관련해 “노사 합의 없는 로봇 도입은 불가능하다”며 공개 반발하기도 했다.
완전 월급제와 정년 연장 문제도 주요 쟁점이다. 노조는 생산라인 자동화로 노동 시간이 줄더라도 기존 임금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 국민연금 수급 시기와 연계해 정년을 최장 65세까지 연장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사측은 인건비 부담과 인력 구조 경직 등을 우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아(대표 송호성·최준영) 노조 역시 올해 임단협에서 성과급 확대와 AI·자동화 도입에 따른 고용 안정 장치 마련을 핵심 요구안으로 검토하고 있다. 현대차와 마찬가지로 신기술 도입 과정에서 고용 안정과 노동 조건 보장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로봇 도입 문제를 두고 예년보다 강도 높은 임단협에 나설 가능성 높은 상황이다. 현대차와 기아 노사는 예년보다 약 두 달 빠르게 올해 임단협 준비에 돌입했다. 현대차 노사는 지난 6일 울산공장 본관 동행룸에서 올해 임금협상 상견례를 열고 공식 교섭에 들어갔으며 노조는 오는 13일 임금협상 출정식을 열 예정이다. 기아 역시 이르면 오는 28일 이후 상견례를 열고 본격적인 교섭에 착수할 것으로 알려졌다.
포스코(대표 장인화·이주태)는 협력사 직원 직접고용 문제를 둘러싸고 노사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포스코 노조는 11일 중앙노동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하며 쟁의권 확보 절차에 들어갔다. 지난 6일 열린 노사공동합의체 회의에서 직고용 문제를 논의했지만 접점을 찾지 못한 데 따른 것이다.
갈등의 핵심은 포스코의 협력사 직원 약 7000명 직접고용 방침이다. 포스코는 지난 4월 포항·광양제철소 협력사 직원들에 대한 직고용 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2011년부터 이어진 불법파견 소송과 대법원 판결에 대응해 원·하청 구조를 정리하려는 조치로 해석된다.
포스코 노조는 회사가 노조와 충분한 협의 없이 직고용을 일방 추진했다고 반발하고 있다. 노조는 기존 정규직 직원들과의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며 임금·복지·직군 체계 변화에 대한 보상과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노조는 사측에 직고용 추진과 관련한 포스코홀딩스 경영진의 사과와 보상방안 논의를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노사가 중노위의 조정안을 모두 받아들이면 조정이 성립되지만 향후 조정이 불성립하면 노조는 쟁의행위권을 확보할 수 있다.
조선업계에서는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하청 노조의 원청 직접 교섭 요구가 본격화하고 있다. 성과급과 원·하청 동일 처우 문제가 올해 조선업계 노사 갈등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 상황이다.
HD현대중공업(대표 이상균·금석호) 하청노조는 성과급 동일 지급 및 기본급 14만9000원 인상 등을 담은 원청 교섭 요구안을 확정하고 원청 노조와의 교섭 타결 시 지급되는 격려금도 동일하게 지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앞서 지난해 성과급 지급 과정에서 일부 정년퇴직자와 외국인 노동자 등이 제외됐다며 반발하기도 했다.
한화오션(대표 김희철)은 지난해 원·하청 노동자 성과급을 동일하게 지급해 정부로부터 모범사례로 언급되기도 했지만 노조 측은 국적과 근속, 이주·정주 노동자 차별에 대해 극명한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지난달에는 한화오션 하청지회 등이 원청교섭 촉구 항의서한을 전달했다.
IT업계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감지된다. 카카오 노조(전국화섬식품노조 카카오지회)는 지난 7일 사측과의 교섭 결렬을 선언하고 경기지방노동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했다. 카카오 노조는 영업이익의 13~15%를 성과급 재원으로 요구하고 있다. 조정 실패 시 단체행동에 나설 방침이다.
재계 관계자는 “SK하이닉스의 초과이익분배금(PS) 상한 폐지 이후 기업 간 성과급 비교가 본격화되면서 노조 요구 수준도 전반적으로 높아지고 있다“며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에는 하청 노조의 원청 직접 교섭 요구까지 확산하면서 산업계 전반의 노사 갈등이 더욱 격화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임규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