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던가. 거칠 것 없이 질주하는 현대기아자동차(대표 정몽구)가 요즘 내부적으로는 심각한 속앓이에 시달리고 있다.
노사관계에 먹구름이 끼고 있어서다. 집단 휴가 와중에도 정몽구 회장의 표정은 그리 편치 않다.
현대기아차의 상반기 실적은 “더 이상 좋을 수 없다”란 표현에 딱 부합한다.
현대자동차의 상반기 매출액은 38조3천249억원, 영업이익은 3조9천542억 원, 당기순이익은 4조 1천841억원이다. 같은 기간 기아자동차는 매출액 22조2천383억원, 영업이익 1조8천717억원, 당기순이익 2조810억원을 기록했다.
모두 전년동기 대비 20~70% 가량 급증한 수준이다. 대부분의 제조업체들이 고유가 등 원자재가 상승으로 고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홀로 독야청청하고 있다.
7월에도 이 기세를 이어나가 현대차는 전년동월 대비 9.8% 증가한 32만3천637대를, 기아차는 전년동월 대비 15.2% 늘어난 20만6천600대를 판매했다.
이처럼 외부로는 욱일승천의 기세건만 내부 노사협상은 심상치 않은 분위기다.
지난달 27일 민주노총 전국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 이경훈 지부장은 사측과의 협상장에서 5분만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 지부장은 “타임오프 때문에 현장이 홍역을 겪고 있는 와중에 사측은 정부 핑계, 법 핑계만 대고 있다”며 심각한 분노와 불신감을 드러냈다.
지난해 7월 도입된 타임오프제도는 노조원의 수에 따라 노조전임자들의 수를 제한하고 있다. 현대차 노조원은 약 4만5천명이므로 법적으로 허용되는 근로면제시간은 약 4만8천 시간이다. 1인당 2천시간으로 환산하면 가능한 노조전임자의 수는 24명인 셈.
하지만 현대차의 노조 전임자 수는 임시 상근자와 금속노조·민주노총 파견자를 합해 모두 233명에 달한다. 이들에게 지급되는 연간 임금만 130억원 이상이다.
김억조 현대차 사장은 지난 4월 노조 전임자 전원을 무급휴직자로 발령했다. 이 때문에 노사간의 갈등이 격화되면서 6월 아산공장위원회 소속 박종길(남.49세) 씨가 자살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현재 노조 측은 233명 전원을 유급 노조전임자로 인정해줄 것을, 사측은 유급전임자 26명, 무급전임자 104명의 타임오프 적용안을 내세우면서 서로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사측의 제안대로 할 경우 무급전임자의 임금은 노조 운영비에서 나와야 한다.
노조 측은 “전국적인 조직을 그 인원으로 관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법규보다 무엇이 현대차의 실정에 맞는지 고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지부장은 “그동안 모든 공장이 업무를 완수했고, 그에 따라 회사의 실적도 최고조에 달하고 있는 만큼 회사의 통 큰 결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사측은 “강행법규는 지켜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이미 근로자 수 100명 이상의 유노조 사업장 중 90% 이상이 타임오프를 도입했다. 기아차도 노조 전임자 수를 기존 234명에서 유급 21명, 무급 70명으로 61.1% 감소에 합의했다. 현대차의 노사협상은 타 사업장의 기준이 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지킬 것은 지키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억조 사장은 울산공장 게시판 등에 붙인 담화문을 통해 “우리가 실정법조차 지키지 못할 경우 품질향상으로 이뤄낸 브랜드 이미지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현대차 노조는 “절대다수의 사업장이 노조전임자와 관련해 별도 합의나 비공개로 운영하고 있다. 법이니까 무조건 지켜야 한다는 주장은 이해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실제로 타임오프제도의 개정 절차에 문제가 있으며, 지키지 않더라도 정부로서는 뾰족한 제재 방법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 노무법인 서해의 박대영 노무사는 “노동부에서 타임오프를 지키지 않는 사업장이나 노조를 처벌할 방법이 별로 없다”면서 “시정명령을 내린 후 그래도 지키지 않으면 사주와 노조 양측에 5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릴 수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현대차의 2011년 임단협은 타임오프를 사이에 둔 뜨거운 갈등 때문에 제대로 진전조차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일단 양측은 휴가가 끝난 후 다시 협상의 자리를 마련할 예정이지만, 노조 측에서는 대의원회의를 거쳐 쟁의에 돌입할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3년만의 노사분규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우호적인 분위기로 진행되던 기아차 노사협상 또한 잠정협의안이 노조원 투표에서 부결되면서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지난달 27일 열린 전국금속노조 기아자동차지부 총회는 3만320명 참여에 찬성 46.8%(1만3천547명), 반대 52.8%(1만5천258명)로 노조 대표와 회사가 합의한 임금협상안을 부결시켰다.
김성락 지부장 외 5개 지회장과 대의원교섭위원들이 만장일치로 찬성한 안이었기에 노조 측에서도 당황한 분위기가 역력했다. 기아차 노조 관계자는 “휴가 전 타결을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잠정협의안 도출 후 현장에 근거 없는 루머가 유포되었다”면서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에 따라 휴가 후 기아차에서도 ‘무분규 시대’가 막을 내리고, 투쟁에 돌입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아울러 총 2만7천522명의 체불임금 반환 소송을 둘러싸고 기아차 노사간의 갈등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올해 1~7월 현대기아차의 질주는 눈부실 정도다. 그러나 노사협상이 매끄럽게 체결되지 못하고 쟁의행위가 전 사업장으로 번져나갈 경우 순탄하던 경영 흐름이 끊어져 하반기 영업에 차질을 초래할 위험이 높다.
정몽구 회장의 고속질주에 빨간불이 하나 켜진 셈이다.(사진=연합뉴스)
[마이경제 뉴스팀/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안재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