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의 성장을 견인하던 주력 업종들이 중국 기업의 무차별 공습에 휘청거리고 있다. 철강, 자동차, 디스플레이, 전자 등 업종을 가리지 않고 '황사'가 덮치고 있는 형국이다. 중국 기업의 과잉생산으로 무한 가격 경쟁에 내몰리거나, 시장에서 점유율 하락으로 선두 기업으로서의 입지가 흔들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급기야 정부가 나서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외칠 정도로 위기에 몰린 국내 산업계의 돌파구는 무엇인지 시리즈로 살펴본다. [편집자 주]
중국 가전업체들의 공세가 무섭다. 인수, 합병으로 몸집을 키우고 글로벌 시장으로 진격하고 있다.
미국의 전자 기기 제조업체인 제너럴 일렉트릭(General Electric)은 지난 6일(현지시각) 중국의 가전 업체인 ‘하이얼(Haier) 그룹’에 가전부문(appliance unit)을 56억 달러(약 6조 4천764억 원)에 매각 완료했다. GE 가전부문을 인수한 하이얼 그룹은 미국의 거대 시장 등에서 가전제품 판매를 확대시킨다는 방침이다.
또 다른 중국 가전회사인 메이디는 지난 3월 일본 도시바의 백색가전사업 자회사 라이프스타일의 지분 80%를 사들이면서 세계 가전업계의 선두에 오르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중국의 가전유통업체 쑤닝은 이탈리아 프로축구 세리에A 명문 구단인 인터밀란을 인수키로 했다. 중국 신랑망(新浪網)은 이탈리아 언론 등을 인용해 쑤닝이 인터밀란 지분 70%를 7억5천만 유로(약 1조 원)에 인수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중국 가전업체가 세계 최대 명문구단까지 인수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중국의 진격은 국내시장에서도 진행 중이다. 세탁기와 냉장고에 이어 고급 TV 시장까지 중국 가전업체들이 속속 진출하고 있다.
샤오미는 올해 국내 유통업체와 정식 총판 계약을 맺고 공기청정기와 정수기 등을 차례로 선보였다. 중국산 제품의 ‘원조’ 격인 하이얼도 소형 세탁기와 에어컨, 냉장고 등을 판매 중이다.
국내 최대 가전 유통업체인 롯데하이마트는 TCL의 ‘초고화질(UHD) 커브드 TV’(사진)를 전국 440여개 매장에서 판매 중이라고 밝혔다. 국내 소비자들에게는 생소하지만, TCL은 중국 내수 시장을 발판 삼아 TV 판매량 기준 세계 3위인 가전업체다.
◆ 중국 가전업계, 입수합병 통해 기술력과 브랜드 갖추며 무섭게 추격
중국 업체들은 한국 가전산업에 가장 큰 위협요소다. 최근 중국 업체들은 인수합병(M&A)을 통해 기술력과 브랜드까지 갖추며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업계와 전문가들은 한국과 중국의 기술력에 큰 차이가 없다고 평가한다.
지난해 9월 한국경제연구원이 조사 발표한 '한국 가전산업의 한중일 국제경쟁력 비교 및 정책제언'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가전기업들의 경쟁력이 크게 성장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정체, 일본은 침체 기조를 보였다.
한중일 3국의 기계·전자제품의 현시비교우위지수(RCA)를 비교한 결과, 중국은 2009년 1.86에서 2013년 2.1로 12.9% 상승했다. 이에 반해 한국은 1.75에서 1.78로 1.7%의 낮은 상승률을 보였다.
RCA는 특정국 수출에서 특정 상품(서비스 포함)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을 세계 수출시장에서 해당 상품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으로 나눈 것이다. 특정 상품의 수출경쟁력을 따질 때 쓴다. 지수가 1보다 크면 비교 우위가 있다. 현시비교우위지수란 세계 전체 수출시장에서 '특정상품의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과 '특정국의 수출에서 동 상품수출이 차지하는 비중' 사이의 비율을 말한다.
중국 가전업체들은 수출에서도 급성장하고 있다. 1992년부터 2014년까지 중국의 전자제품 수출 비중은 1992년 2%에서 2014년 32%로 크게 상승했다. 반면 한국은 같은기간 4.8%에서 6.2%로 소폭 상승했다.
◆ 프리미엄으로 격차벌리려는 한국...첨단기술로 격차 유지해야
삼성전자(대표 권오현), LG전자(대표 정도현·조성진·조준호) 등 국내 가전업체들은 '프리미엄(premium)' 전략으로 맞서고 있다. 중저가 시장에서 중국과의 경쟁을 피하고 브랜드와 품질로 고급시장에서 승부를 내겠다는 것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스마트폰과 TV, 세탁기, 냉장고 등 거의 전품목에 걸쳐 세계 최고 수준의 사양과 기술을 집결한 최고급 제품을 잇달아 선보이고 있다.

LG전자 HE사업본부는 올레드 TV, 울트라HD TV 등을 선보였고, MC사업본부는 프리미엄 스마트폰 G시리즈와 V시리즈를 출시했다. H&A사업본부는 일반 가전(프리스탠딩)의 초프리미엄 브랜드 ‘LG 시그니처’와 빌트인 분야의 초프리미엄 브랜드 ‘시그니처 키친 스위트’를 시장에 내놓았다. 삼성전자도 갤럭시 S7, 셰프컬렉션 냉장고, 무풍에어컨 Q9500 등 프리미엄 제품들을 잇따라 출시했다.
이러한 프리미엄 전략은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LG전자는 올해 1분기 연결기준 13조3621억원의 매출과 5052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4.5% 줄었지만, 영업이익은 65.5%나 증가했다. 이런 호실적은 생활가전(H&A)과 홈엔터테인먼트(HE) 사업부가 이끌었다. 특히 H&A사업부의 영업이익률이 9.7%에 달했는데 프리미엄 전략이 성과를 거둔 것이다. 삼성전자도 프리미엄 제품들의 활약으로 글로벌 생활가전업체들의 최대 격전지인 북미 생활가전 시장에서 지난해 1분기 점유율 1위(16.6%)를 사상처음 달성했다.
하지만 프리미엄 전략이 언제까지 통할지 기약할 수 없는 처지다. 중국 업체들 역시 프리미엄 시장 진출을 준비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중국 내수시장이 위축되면서 해외 프리미엄 시장을 넘보고 있다. 중국 하이얼의 제너럴일렉트릭(GE) 가전사업부 인수가 대표적이다. GE는 미국에서 점유율로는 4∼5위권이지만 제품군은 프리미엄 중심이다.
중국 하이센스는 지난해 일본 샤프(Sharp)의 TV 브랜드를 사들였고, 중국 TCL은 일본 산요의 멕시코 TV공장을 인수했다. 중국 스카이워스는 독일 내 유명 브랜드인 메츠(METZ)를 사들이기도 했다. 중국 스마트폰 업체 화웨이는 차곡차곡 쌓아올린 기술 특허로 프리미엄 폰을 척척 출시해 내고 있다.
경험이 부족한 중국 업체가 프리미엄 시장을 당장 잠식하긴 어렵지만 삼성전자와 LG전자 역시 저가 제품으로 해외 시장 공략을 시작했고, 프리미엄 시장에 안착했듯이 중국이 그러지 못하리란 법이 없다.
업계에서는 국내 가전업계가 중국의 추격을 뿌리치지 위해서는 중국보다 한 발 앞선 기술력을 통해 계속 차이를 벌려 나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 가전제품의 보급률이 낮은
신흥시장 등이 니치마켓에 효율적으로 진출할 필요가 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이 프리미엄을 쫒아오면 초(超) 프리미엄으로, 중국이 초 프리미엄을 쫒아오면 초초 프리미엄 등으로 격차를 계속 벌려나가야 한다"며 "급변하는 경제환경 변화에 대비해 미래 성장동력 확보 차원에서 사물인터넷 등 융복합제품 개척 및 센서제품 등 첨단기술시장에 보다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김국헌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