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은 가계부채 비중이 높은 은행권을 압박해 '증가율'을 낮추려는 반면, 일부 은행권은 금융당국이 내놓은 '고정금리 대출 비중 확대' 등의 대책에 회의적 반응을 보이며 급기야 '신규 가계대출 잠정중단'으로 반기(?)를 드는 양상을 보였다.
이 때문에 신규 대출을 받을 수 없게 된 서민들은 불편과 원성을 쏟아냈다. 일각에서는 상당수 서민대출자들이 금리가 높은 2금융권이나 대부업체로 몰려 오히려 가계부채 위험성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결국, 금융당국과 은행권은 한발 물러서 가계부채문제 추가방안 마련과 기존 대출의 상환 독려 등으로 가계대출 증가율을 억제키로 방침을 정했다.
금융계는 시장의 부작용을 고려하지 않은 금융당국의 급진적 대책을 지적하는 한편, 그간 은행권이 금융소비자들로부터 '고금리 대출수수료'로 막대한 이익을 챙겨온 것도 모자라 '가계부채' 문제해결보다는 오히려 서민대출자를 볼모로한 '은행 이기주의적' 태도를 보인데 대해 심각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특히, 가계부채 문제는 국내의 잠재적인 리스크 요인 중의 하나로 이를 적절히 규제하지 못할 경우 서민가계 파산은 물론 금융기관의 건전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지만 여전히 '공공성' 보다는 어떤 대안이 자기 은행에 유리한지 '셈법 계산'만 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은행권의 가계대출 셈 법, '공공성' 상실 우려
사실 금융당국은 수년전부터 가계부채 증가 현상이 심화되고 있음에도 체계적․효율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은행 등의 금융기관에 이를 전적으로 맡기는 우를 범했다.
또한 부동산 경기 활성화 등을 이유로 시행한 DTI(총부채상환비율) 규제 완화와 금리 정상화 실패 등도 가계부채 증가의 주요 요인이 됐다.
지난 22일 한국은행(총재 김중수)이 발표한 '2011년 2분기 중 가계신용(잠정)' 자료에 따르면 6월말 현재 가계부채 잔액은 876조3천억원(가계대출 826조원, 판매신용 50조3천억원)에 달했다. 이는 1분기(10조4천억원)보다 18조9천억원 늘어난 수치다.
이중 예금은행의 가계대출은 444조3천억원으로 1분기(435조1천억원) 대비 9조2천억원 증가했다.
금융당국은 가계부채 증가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자 지난 6월말 은행의 고정금리ㆍ비거치식 분할상환대출 비중을 현 5% 수준에서 2016년말까지 전체 주택담보대출의 30% 수준까지 확대하고 변동금리 대출에서 고정금리 대출로 전환시 중도상환수수료를 면제해 주기로 하는 내용을 담은 '가계부채 연착륙을 위한 종합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전체 은행권의 가계대출 증가폭은 7월에만 2조2천억원에 달했고 이달 들어서는 2주일 만에 1조5천억원이 급증하는 등 대출규모는 오히려 늘어났다.
주요 은행권의 가계대출 현황을 보면 국민은행(행장 민병덕)이 7월말 현재 101조986억원, 이달 17일까지 101조3617억원으로 가계대출 비중이 가장 높았다.
농협(신용대표 김태영)의 경우 7월말 현재 58조6천억원 이달 17일까지 59조9천억원을 기록, 단기간에 1조3천억원 증가하며 시중은행 중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신한은행(은행장 서진원)은 7월말 잔액이 63조8천544억원, 17일 현재 64조2천227억원을, 우리은행(은행장 이순우)은 7월말 59조8천억원, 17일 현재 60조1천억원을 나타냈다. 하나은행(은행장 김정태)의 경우 7월말 가계대출 잔액이 50조3천937억원, 17 현재 50조5천억원을 기록했다.
시중은행 가계대출 중단 묘수? 꼼수?
금융위원회(위원장 김석동)는 은행권의 가계대출이 가파르게 늘어나자 지난 12일 각 시중은행 부행장들을 불러 "가계대출 증가율을 0.6% 이내로 낮추라"는 구두지침과 이러한 내용의 공문을 각 은행에 보내는 '압박카드'를 썼다.
그러나 이번에도 농협과 하나은행, 신한은행, 우리은행 등 일부 은행은 전세자금대출 등 실수요자 대출을 제외한 대부분의 신규 가계대출을 8월말까지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또 상환능력이나 자금용도 등이 증빙되지 않는 신용대출과 부동산담보대출에 대한 심사를 강화해 대출을 엄격히 제한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들 은행은 하나같이 "가계대출 증가율을 낮추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항변했지만 실상 금융당국에 대한 선전포고로 받아들여졌다.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이 "가계대출 중단 철회"를 촉구하는 등 비난 여론이 거세게 일자 일부 은행들은 가계대출 허용을 재검토하는 등 발빠른 모습을 보였다.
농협 관계자는 "신규 가계대출을 전면 중단한다는 것은 잘못 와전된 것으로 농협에서 정한 기준에 따라 실수요자 중심으로 시행하고 있다"며 "최근 타행대비 가계대출 증가율이 높아 대출심사 기준을 강화했는데 국민은행 등에 비해 가계대출 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고 해명했다.
반면, 시중은행 중 유일하게 가계대출을 중단하지 않은 국민은행 측은 "신규 가계대출과 관련해 종전과 동일하게 적용하고 있다"며 "다만 타은행의 신규대출 제한으로 인행 상당수 대출수요자들이 국민은행으로 집중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고 우려했다.
가계부채 점진적 해결 필요..대출자 소득.상환능력 고려돼야
금융당국은 사태가 일파만파 확산되자 지난 19일 다시 시중은행 부행장들을 소집, 연간 가계 대출 증가율을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수준인 7.3%에서 관리하되, 월별 가계 대출 증가율을 획일적으로 규정하지 않고 자금 수요에 따라 유연하게 관리토록 당부했다.
이에 은행들은 주식투자 등을 위해 대출받은 고객 등 기존 대출 상환을 적극 유도해 나가기로 했다.
이와 관련, 김진욱 참여연대 사회경제팀 간사는 "개인금융부채가 1천조원에 달하고 가계부채 대출구조가 위험한 상황이기 때문에 정부가 가계부채 총량을 규제/관리하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며 "그럼에도 시중은행들이 갑자기 신규 가계대출을 중단했다는 것은 정부의 방침에 대해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김 간사는 "이번 사태를 통해 시중은행들이 과연 '금융의 공공성'에 대해 올바로 이해하고 있는지, 자기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조치를 취하는 것 아닌지 의문이 든다"며 "마이크로크레딧이 활성화되지 못한 상황에서 은행들이 가계대출을 중단해버리면 생계형 대출과 주택담보대출을 받아야할 사람들은 고금리의 제2금융권이나 대부업체로 내몰린다는 걸 알면서도 이렇게 무책임한 조치를 내린 저의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그는 "가계부채 규모자체가 크고 증가폭이 줄어들지 않은 상황에서 당장 대출을 감소시키기는 어렵기 때문에 점진적 장기적으로 해결할 필요가 있다"며 "소득능력, 상환능력을 파악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담보 물건만 보고 상환하지 못하면 담보를 회수하는 식의 대출은 줄이고 DTI제도 법제화, 만기/일시 상환 등의 일탈적 대출 중단, 주택담보대출의 고정금리/장기금리대출 비중 확대를 위한 노력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이경제 뉴스팀/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임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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