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여'(巨與)를 독자적으로 견제할 개헌저지선을 확보하지 못하고 제1야당으로서의 명맥을 잇는 수준의 성적표를 받아들면서 당 전체가 선거 패배의 후폭풍에 휘말려들 조짐이다.
절대 의석수도 기대치 이하이지만 여당에 거의 `더블 스코어'에 가까운 격차로 패배함으로써 견제야당으로서의 대항력을 상실하고 있는 점이 당을 `심리적 공황' 상태로 몰아넣고 있는 분위기다.
당장 당 내부는 총선결과에 대한 평가와 선거패배 책임론을 둘러싸고 내부갈등의 회오리에 휩싸일 조짐이다. 당 지도부를 이끌어온 손학규 대표는 당장악력과 리더십이 약화되면서 인책론에 직면할 전망이다. 특히 손 대표 자체가 종로에서 낙선함으로써 당내 입지는 더욱 좁아지게 됐다.
다만 손학규계는 대선직후 `정치적 파산' 상태에 빠진 당을 그나마 `살려냈다'고 자평하면서 질서있는 체제정비를 시도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그러나 그동안 손학규계와 긴장관계에 있었던 당내 계파들이 선거패배는 물론 공천실패에 대한 책임문제까지 거론하며 지도부 총사퇴를 요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대선참패 이후 통합과 공천과정에서 누적된 불만과 갈등요인들이 총선을 계기로 한꺼번에 분출하면서 당이 첨예한 `내전'상태에 빠져들 공산이 있다는 얘기다.
만약 이번 선거 패배에 따른 지도부 책임론이 불거질 경우 조기 전대론으로 이어지며 당권경쟁이 점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월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이 통합하면서 `총선후 3개월' 이내에 전당대회를 치르도록 합의했으나 이번 총선 참패를 계기로 전대를 앞당겨 치르자는 당내 여론이 급부상할 관측이 적지 않다.
6월께 개최될 것으로 예상되는 전대 경선은 총선 평가 뿐만 아니라 야당으로서의 진보적 정체성 정립, 쇄신의 방향을 둘러싼 계파간 노선투쟁 형태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은 `간판급 인물'들을 중심으로 계파들의 이합집산이 가속화되면서 당내 세력질서를 새롭게 정립하는 과정을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당의 역학구조는 뚜렷한 `대주주' 없이 손학규계, 구민주당계, 정동영계, 친노그룹, 386그룹 등이 각개약진하는 형국이지만 이번 전대를 거치면서 새로운 `힘의 질서'가 구축될 가능성이 높다.
열린우리당 시절 당의 최대주주였던 정동영계는 정동영 후보와 측근들의 낙선으로 퇴조의 길을 걸을 가능성이 높고, 친노그룹도 뚜렷한 구심점을 잃고 분화될 것으로 보인다.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김대중 전대통령측 박지원 비서실장의 복당 여부도 당내 세력판도에 영향을 끼칠 변수다.
당내에서는 손학규 대표의 당권 재도전 가능성도 거론되는 가운데 열린우리당 마지막 의장을 지낸 정세균 공동선대위원장, 4년전 탄핵역풍을 맞아 `정치적 휴지기'를 보냈던 추미애 전의원, 총선 불출마 이후 전국 지원유세를 벌였던 강금실 선대위원장, 한명숙 의원 등이 간판주자로 주목받고 있다.
당의 향후 진로와 관련해 눈여겨볼 대목은 초선의 약진이 두드러졌던 17대 총선과는 달리 주로 재선급 이상이 당의 전면에 포진하고 있는 점. 당의 외연은 줄었지만 중량감은 높아져 상대적으로 당의 안정적 운영이 가능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치권에서는 민주당이 내부 노선투쟁 과정에서 자칫 분열의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창조한국당 등 거대 여권에 맞서는 범진보진영의 재배치 움직임과 맞물려 정치권 새판짜기의 도화선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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