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의 올해 8월까지 일본 시장 판매량은 695대로 7.3% 늘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기아는 6월부터 전기 PBV(목적 기반 차량) PV5의 인도를 시작했지만 석 달 동안 겨우 25대 판매하는 데 그쳤다.
자국 브랜드 선호도가 높아 수입차의 무덤으로 불리는 일본 시장 공략을 위해 현대차는 전기 승용차에서 전기·수소 상용차까지 제품군을 확대하고 기아는 법인 고객과 지역 판매망을 중심으로 시장 공략의 고삐를 죄고 있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의 올해 8월까지 일본 시장 판매량은 695대로 전년 동기 대비 7.3% 증가했다. 기아는 지난 6월 PV5 판매를 시작해 8월까지 25대를 판매했다.
현대차와 기아의 합산 판매량은 720대에 그쳤다.
현대차는 2001년 일본 승용차 시장에 처음 진출해 2004년 역대 최대인 2524대를 판매했다. 이후 판매 부진이 이어지자 2009년 철수했고 2022년 12년 만에 승용차 시장에 재진출했다.
재진출 이후 판매량은 2022년 526대, 2023년 492대, 2024년 618대, 지난해 1169대로 집계됐다. 2024년부터 2년 연속 판매가 증가하고 있다. 현재 추세라면 올해 연간 판매량은 1000대 안팎으로 예상된다.
현대차의 일본 시장 판매 증가는 경형 전기 SUV 캐스퍼(현지명 인스터)가 견인하고 있다. 인스터는 올해 8월까지 일본에서 412대가 판매돼 6.5% 늘었다. 전체 판매량의 59.3%를 차지한다. 일본은 좁은 도로와 주차 환경 등의 영향으로 소형차 수요가 높은 시장이다. 경형 전기 SUV인 인스터가 이러한 시장 특성과 맞아떨어진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4월 일본시장에 출시된 넥쏘의 8월까지 판매량은 74대로 두 배 이상 증가했지만 판매 규모가 작다.
기아는 지난 5월 직영 딜러 1호점인 ‘기아 PBV 도쿄 니시’의 영업을 시작하며 일본에서 전기 PBV PV5 판매를 본격화했다.
PV5 판매량은 6월 7대, 7월과 8월 각각 9대로 누적 25대를 기록했다. 모델별로는 패신저 16대, 카고 9대다. 일본 판매법인인 기아 PBV 재팬이 지난 5월 출시 당시 제시한 올해 판매 목표 1000대와 비교하면 8월까지 목표 달성률은 2.5%에 그친다.

지난해 일본 승용차 신차 판매량은 383만6372대였지만 외국계 브랜드 판매량은 24만1189대로 전체의 6.3%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국내 승용차 시장에서 수입차가 차지한 비중은 20%를 웃돌았다.
일본 시장이 하이브리드차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는 점도 전기차와 수소차를 앞세운 현대차와 기아가 고전하는 원인으로 꼽힌다.
지난해 일본에서 판매된 승용차 가운데 하이브리드차는 198만6329대로 51.8%를 차지했다. 전기차 판매량은 6만677대로 비중이 1.6%에 그쳤다.
현대차는 일본에서 내연기관차를 판매하지 않고 전기차와 수소차 중심으로 제품군을 확대해 왔다. 2022년 5월 아이오닉5와 1세대 넥쏘를 시작으로 2023년 11월 코나 일렉트릭, 2024년 6월 아이오닉5 N, 지난해 4월 인스터를 차례로 투입했다. 올해 4월에는 2세대 신형 넥쏘를 출시했다.
현대차와 기아의 일본 시장 판매 부진이 더욱 아쉬운 이유는 현대차그룹 오너가 4세가 첫 실무 경험을 쌓고 있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장남 정창철 씨는 지난해 초 현대차 일본 법인인 현대모빌리티재팬에 평사원으로 입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씨는 요코하마 본사 상품기획 부문에서 선행 상품 개발과 상품성 검토 등을 담당하며 현장 경험을 쌓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현대차그룹이 오너가 4세의 첫 근무지로 일본을 택할 만큼 현지 시장에 공을 들이고 있지만 현대차의 판매량은 여전히 과거 철수 전 기록한 최대 실적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현대차와 기아가 일본에서 전기차와 수소차를 앞세우는 것은 일본 시장의 정면 승부를 피하면서 성장 가능성이 큰 분야를 선점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내연기관차와 하이브리드차 시장은 토요타와 혼다 등 일본 업체에 대한 자국 브랜드 선호도가 높아 후발주자가 점유율을 확보하기 쉽지 않다. 반면 전기차와 수소차는 아직 시장 형성 초기 단계인 데다 일본 정부도 보급 확대를 추진하고 있어 새로운 수요를 공략할 여지가 상대적으로 크다.
일본 정부도 상용차 전동화를 추진하고 있다. 2021년 6월 발표한 녹색성장전략에서 2030년까지 8톤 이하 소형 상용차 신차 판매의 전동차 비중을 20~30%로 높이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는 전기 PBV인 PV5를 앞세운 기아와 향후 전기·수소 상용차 투입을 추진하는 현대차에 긍정적인 요소다.
기아 역시 지난 5월 일본 시장 진출 배경으로 물류·라스트마일 배송 수요 증가와 운송업계 인력 부족, 지역 간 교통 격차 등을 꼽으며 소형 전기 모빌리티 수요가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현대차는 지난 8월 현대모빌리티재팬의 신임 대표로 나오미 후도 전 볼보자동차재팬 사장을 선임했다. 후도 대표 체제에서 전기차와 수소차 중심의 승용차 판매를 넘어 상용차까지 아우르는 ‘원 ZEV 전략’을 추진한다. 향후 전기 MPV와 전기버스, 수소 상용차 등으로 제품군을 확대할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올해 초 공개된 전기 미니밴 ‘스타리아 일렉트릭’의 일본 투입 가능성도 거론된다.
기아는 일본 종합상사 소지츠가 설립한 ‘기아 PBV 재팬’을 통해 현지 사업 기반을 구축했다. 지자체와 대형 법인을 대상으로 직접 판매하는 동시에 지역 딜러망도 확대할 방침이다.
기아는 지난 5월 PV5 출시 당시 도쿄니시 직영점을 포함한 딜러샵 7곳과 서비스센터 52곳을 확보했다. 연말까지 딜러샵을 11곳, 서비스센터를 100곳으로 늘릴 계획이다.
제품군도 확대한다. 현재 판매 중인 PV5 패신저 5인승과 카고에 이어 올해 말 패신저 7인승과 내년 초 휠체어 탑승 차량(WAV)을 추가할 예정이다. 2028년에는 PV5보다 차체가 큰 PV7을 일본 시장에 투입할 계획이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와 기아가 일본 시장에서 전기차와 수소차를 앞세우는 것은 일본 업체들이 장악한 내연기관차와 하이브리드차 시장에서 경쟁하기보다 아직 시장 형성 초기인 전동화 분야를 선점하려는 전략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임규도 기자]
